토마스 굿윈, 생각의 허망함 (The Vanity of Thoughts)
토마스 굿윈, 생각의 허망함 (The Vanity of Thoughts)
첫째, 영적이고 하늘에 속한 진리들에 있어서 성화되고 하늘에 속한 지식의 좋은 자산들로 마음을 갖추고 풍성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마음에 쌓은 좋은 보화에서) 선한 것을 내느니라" (마태복음 12:35)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즉, 그는 모든 은혜, 그토록 많은 귀중한 진리들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들은 광석 안에 있는 금과 같아서 그의 생각들이 조폐국처럼 주조해 내고 두드려 펴며, 말로서 밖으로 내어놓는다는 것입니다. "선한 사람은 그 마음의 선한 보고에서 선한 것을 내느니라." 그러므로 마음에 숨겨진 귀중한 진리의 광산이 없다면, 우리의 생각이 찌꺼기 같고 거품 같으며 허망한 생각 외에는 아무것도 주조해 내지 못한다 해도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마음을 먹여 살려야 할 더 좋은 재료들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잠언 6장 14절에서 "그의 마음에 패역을 품으며 항상 악을 꾀하여(forge, mint, hammer)"라고 말합니다. 유니우스(Junius)는 이를 이렇게 읽습니다.
또는 사람들이 자연적인 지식의 창고는 가지고 있으나 자신들을 위한 영적으로 유익한 지식이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말로 선한 것들을 내놓을 수 있을지 모르나, 혼자 있을 때 그들의 생각은 그것들을 향해 달리지 않습니다. 이를 위해 신명기 6장 6, 7절의 말씀을 취해 보십시오. 이 말씀은 말씀을 마음에 쌓아 두고, 그것에 깊이 익숙해지며, 그로부터 지식을 얻는 것이 우리가 혼자 있을 때 우리의 생각이 잘 훈련되도록 지켜주는 효과적인 수단임을 보여줍니다. 5, 6절에서 율법의 그 말씀들을 '마음에 새기라(마음에 두라)'고 명령하신 목적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들을 가르치기 위함과 동시에 우리가 가장 한적하고 혼자 있을 때, 사람이 생각 속에서 마음을 행사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우리의 생각을 사로잡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말을 타고 갈 때나 걸을 때, 누울 때나 일어날 때 (이때는 종종 그리고 대개 생각에 있어서 가장 한적한 시간들이며 온전히 생각으로만 보내는 시간들이고, 많은 이들이 혼자 말을 타거나 혼자 눕습니다), 그때조차도 너는 말씀에 대해 말할지니라고 그분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혼자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이 명령을 수행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거기서 의미하는 '말하는 것'은 (비록 다른 사람들과 말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의도된 것이긴 하지만) 함께 자는 사람이나 동반자에게 그것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단지 외부로 향하는 대화, 즉 프로포리코스 로고스(λόγος προφορικὸς)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도 없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그때는 당신 자신에게 그것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생각들은 엔디아데토이 로고이(λόγοι ἐνδιάθετοι), 즉 마음의 대화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것을 적절하게 해석해 줄 수 있는 잠언 6장 22절을 이 말씀과 비교해 보면 그 의미가 분명해집니다. 솔로몬은 '말씀을 마음에 묶어두라'는 동일한 의무를 권면하면서 그것의 열매인 다음과 같은 동기를 사용합니다. "그것이 네가 깰 때에 너와 더불어 말하리니". 즉, 당신이 말씀을 생각함으로써, 당신과 말씀이 단둘이 있을 때 그것이 당신과 더불어 말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리하여 당신에게 더 나은 동반자가 필요 없을 정도로, 그것은 어떤 것을 불어넣고 제안할 것입니다.
둘째, 당신의 마음에 생생하고 거룩하며 영적인 정서들을 보존하고 유지하도록 힘쓰고, 그것들이 식지 않게 하십시오. 처음 사랑이나 하나님 안에서의 경외심이나 기쁨에서 떨어지지 마십시오. 만일 당신이 태만해졌다면, 그 정서들을 다시 회복하도록 힘쓰십시오. 당신의 정서가 어떠하든지 당신의 생각도 필연적으로 그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서는 마음을 기울게 하여 다른 대상들보다 자신들을 기쁘게 할 만한 그러한 대상들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시편 119편 97절에서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묵상하나이다)"라고 말합니다. 그가 율법에 대해 그토록 자주 생각하게 만든 것은 율법을 향한 그의 사랑이었습니다. 말라기 3장 16절에서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들"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경외(두려워)하는 것을 자주 생각하고 또한 자주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라는 말씀이 추가되었습니다. 경외심은 그들로 하여금 그분의 이름을 많이 생각하게 만들었고, 그것을 생각하는 것은 그들로 하여금 그것을 말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두 가지가 모두 그러하듯 그러한 정서, 그러한 생각, 그리고 그러한 말이 함께합니다.
참으로 생각과 정서는 상호 간의 원인(sibi mutuo causæ)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원인이 됩니다. 시편 39편 3절,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서 작은 소리로 읊조릴(묵상할) 때에 불이 붙으니". 그래서 생각은 정서에 불을 붙이고 타오르게 하는 풀무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타오르면 그것들은 생각들을 끓어오르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갓 회심하여 새롭고 강렬한 정서를 가진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도 더 큰 기쁨으로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셋째, 다른 모든 인식들 중에서도 당신의 마음이 하나님의 거룩하심, 위엄, 편재하심, 전지하심에 대한 깊고 강하며 강력한 인식과 인상들로 사로잡히게 하십시오.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고정하며 끌어당길 능력이 있는 생각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분에 대한 생각들입니다. 하늘에 있는 성도들과 천사들이 영원토록 단 하나의 허망한 생각이나 비뚤어진 흔적조차 갖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분의 임재가 그들을 고정시키고, 그들의 눈이 결코 그분에게서 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방종하고 지나치게 화려하며 방탕한 영을 가진 사람을 취해 보십시오. 그가 두려워하고 존경하는 윗사람 앞에 있기만 해도 그것이 그를 단단하게 다잡아 줍니다. 그러므로 욥은 자기의 생각에 대해 양심을 지켰고 감히 비뚤어지게 쳐다보지 못했습니다. 욥기 31장 1, 2절에서 그가 말하듯, 하나님이 그것을 보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생각을 끌어당기고 단단히 묶어두었습니다. 시편 139편 1~12절에서 그는 하나님의 위대하심, 위엄, 편재하심에 대해 자신이 얼마나 끊임없는 인식을 가졌는지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습니까? 18절, "내가 깰 때에도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
마음속에 가장 강하고 깊은 인상을 남긴 대상들이 무엇인지 보십시오. 사람이 깰 때 그는 가장 먼저 그것들을 생각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에 대해 이토록 강한 인상의 생각을 가졌기에, 그가 깰 때에도 여전히 하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험을 통해, 기도를 드리기 전이나 기도를 시작할 때 하나님의 속성들과 우리와의 관계를 고찰함으로써 사람의 생각을 넓히는 것이 기도 중의 산만함을 피하는 수단이 됨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참으로 우리를 진지하게 만들 것이며, 실제로 그렇게 만듭니다.
넷째, 다윗이 그곳에서 "내가 깰 때에도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라고 한 것처럼, 특히 당신이 잠에서 깰 때 이 일을 행하십시오. 속이 비어 있을 때 생기는 가스(바람)를 방지하기 위해, 사람들은 아침에 위를 채워주는 좋은 음료를 한 모금 들이켭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마음이 본성적으로 발생시키고 텅 빈 상태에서 일어나는 그 허망하고 바람 같고 거품 같은 생각들을 방지하기 위해, 먼저 당신의 마음을 하나님에 대한 생각으로 채우십시오. 그분의 포도주 창고로 내려가십시오. 원할 때 그것을 관찰해 보십시오. 당신이 처음 눈을 뜰 때, 마치 변호사 문 앞에 있는 의뢰인들처럼 많은 허망한 것들과 일들이 당신의 생각과 대화하기 위해 수많은 구혼자들처럼 당신을 기다리며 서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먼저 하나님과 대화하십시오. 그분은 하루 종일 당신의 마음을 안정시켜 줄 어떤 것을 당신의 마음에 말씀하실 것입니다. 업무의 무리가 당신에게 밀려오기 전에 이 일을 하십시오. 어떤 이교도들은 아침에 처음 본 것을 그날 하루 종일 자신들의 신으로 숭배한다고 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의 우상들도 이와 같습니다.
다섯째, 깨어 있는 눈을 가지고 하루 종일 당신의 마음을 관찰하십시오. 생각들이 밀려 들어올지라도 그것들을 관찰하고, 그것들이 눈에 띄지 않게 지나갈 수 없음을 그것들에게 알게 하십시오. 사람이 올바르게 기도하고자 한다면, 그는 누가 들어오고 누가 나가는지도 지켜보아야 합니다. 엄격한 경계와 보초가 세워지고 치안 판사들이 예의 주시하며 보안관과 경찰이 부랑자들을 부지런히 심문하는 곳에는 부랑자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토록 무수히 많은 부랑자 같은 생각들이 집결하고 지나다니는 것은 엄격한 경계가 지켜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면에서 이것이 당신이 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떻게든 지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것들에 대해 불평하고, 그것들을 채찍질하며, 그들에게 통행증(떠나라는 명령)을 내어 주십시오.
여섯째, 허망한 것들이나 호기심을 끄는 구경거리들로 당신의 상상을 너무 즐겁게 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허망한 생각들을 낳습니다. 그러므로 욥은 31장 1절에서 "내가 내 눈과 약속하였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라고 말하며, 잠언 4장 25절은 "네 눈은 바로 보며"라고 말씀합니다.
일곱째, 당신의 소명(직업)에 부지런하십시오. 전도서 9장 10절의 말씀처럼 "네 손이 일을 얻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라고 한 대로 하십시오. 즉, 그 일에 쏟을 수 있는 마음의 모든 의도와 힘을 쏟으라는 뜻입니다. 모든 물줄기가 당신의 물레방아를 돌리도록 흐르게 하십시오. 당신의 생각들을 그 수로에 머물게 하는 것이 그것들이 허망함과 어리석음으로 범람하는 것을 막아줍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장 11절은 일하지 않는 자들을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라 하고, 디모데전서 5장 13절은 게으르며 이 집 저 집으로 돌아다니며 쓸데없는 말을 하는 자들(페리에르고이, περίεργοι)이라 합니다. 그들은 해야 할 일에 바쁘지 않기 때문에 단순히 게으른 자(아르고이, ἀργοὶ)라고만 불리는 것이 아니라, 해서는 안 될 일들에 마음을 쏟기 때문에 참견하는 자들(페리에르고이, περίεργοι)이라고 불립니다. 그들은 이 집 저 집으로 돌아다닙니다. 그들의 마음이 중심 없이 방황하기 때문에 그들의 몸도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홀로 거닐 때, 그의 영은 얼마나 큰 방종(일탈)에 빠졌습니까! 땅을 묵혀 두어 보십시오. 그러면 그곳에 곧 어떤 잡초들이 자라나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을 점유하고, 그것들에게 일거리를 찾아 주며, 그분을 향한 예배의 의무들 사이의 막간에 그것들이 계속 일하도록 우리에게 소명을 정해 주셨습니다. 인간의 영과 생각은 쉴 줄을 모르며 어떤 식으로든 바삐 움직이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왕들이 활동적인 영을 가진 사람들의 머리가 잘못된 방향으로 일하고 음모를 꾸미지 못하도록 그들을 끊임없는 업무에 묶어두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심지어 낙원에서도 활동적인 인간의 영을 계속 일하게 하시려고 그에게 소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통해 인간의 생각에 울타리를 치시고 좁은 길로 가게 하셨습니다. 만일 생각들이 제한받지 않고 자유롭게 내버려진다면 예레미야 2장 24절의 말씀처럼 "들나귀가 바람을 헐떡거림" 같이 될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다만 당신이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너무 많은 업무로 마음을 짓누르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누가복음 10장 40, 41절에서 마르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함'으로 인해 그 '필요한 한 가지'를 잊게 만든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것은 마음을 분산시키는 염려들, 즉 메림나이(μέριμναι)를 낳습니다. (이 단어는 마음을 나눈다는 뜻의 아포 투 메리제인, ἀπο τοῦ μεριζειν에서 유래한 것처럼 그 의미를 가집니다). 마음을 나눔으로써 방황하는 생각들을 유발할 뿐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며, 그 결과 마음은 스스로를 잃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마음을 약화시키고 기력을 빼앗으며, 이것이 허망함이 되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18장 18절에서 이드로가 업무에 짓눌린 모세에게 "네가 필연 기력이 쇠하리니"라고 말한 것처럼, 습기가 말라버린 잎사귀처럼 선한 의무들을 위해 남겨두어야 할 그 진액마저 고갈될 것입니다. 전도서 5장 3절에 "걱정이 많으면 꿈이 생기고"라고 한 것처럼, 무거운 업무의 짐에서 수많은 생각들이 생겨납니다.
여덟째, 당신의 소명과 당신의 모든 길에서, 그리고 그 안에서의 성공과 길들을 위해 당신의 길을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잠언 16장 3절,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생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확고해지리라)". 즉, 다른 사람들이 시달리는 그 혼란과 무질서, 그리고 무수한 염려의 떼들로부터 벗어나십시오. 그리하면 당신의 목적이 잘 성취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행하는 일들 속에서, 몇 번의 믿음의 생각들이 염려와 두려움의 많은 생각들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줄 것입니다. 염려와 두려움의 생각들은 우리가 의도한 일을 전혀 진척시키지 못하므로 허망한 것임이 입증됩니다. 그러한 파도가 마음을 요동치게 하고 혼란스럽게 하며 열정의 바람이 불어닥칠 때, 몇 번의 믿음의 생각들이 마음에 들어오면 그것들은 즉시 모든 것을 잔잔하게 합니다.
질문 1: 저자가 제시한 해결책 중 "아침에 눈을 뜰 때 가장 먼저 하나님을 생각하라"(시 139:18)는 권면이 있습니다. 하루의 첫 생각이라는 빈 그릇을 세상의 염려나 스마트폰이 아닌 하나님으로 채우는 것은 하루 전체의 영적 영점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질문 1: 저자가 제시한 해결책 중 "아침에 눈을 뜰 때 가장 먼저 하나님을 생각하라"(시 139:18)는 권면이 있습니다. 하루의 첫 생각이라는 빈 그릇을 세상의 염려나 스마트폰이 아닌 하나님으로 채우는 것은 하루 전체의 영적 영점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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