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성경 공부
요한복음 성경 공부
요한복음 11장은 요한복음 전반부인 '표적의 책(Book of Signs)'의 위대한 절정이자 마지막 표적인 베다니 나사로의 부활 사건을 다룹니다. 본문은 나사로의 병듦과 주님의 의도적인 유하심을 다룬 '사랑의 지체와 선포(1-16절)' , 마르다와 마리아를 만나시며 자신이 부활과 생명이심을 계시하신 '기독론적 변증(17-32절)' , 무덤 앞에서 눈물 흘리시며 나사로를 살려내신 '사망을 이기신 재창조의 이적(33-44절)' , 그리고 이 표적을 계기로 대제사장 가야바의 주도하에 예수를 죽이기로 결의하는 '산헤드린의 말세적 음모(45-57절)' 로 전개됩니다.
구속사적 맥락에서 11장은 요한복음 전체 구조의 결정적인 '가교(Bridge)' 역할을 담당합니다 [안드레아스 J. 쾨스텐베르거]. 1장부터 12장까지 이어지는 대중을 향한 표적 사역을 마감하는 동시에, 13장 이후의 본격적인 수난 서사(영광의 책)로 넘어가는 전환점이기 때문입니다. 나사로를 무덤에서 살려내신 이 최고의 표적은 예수 그리스도가 온 우주와 생명의 주관자이심을 가장 선명하게 증명합니다 [에드워드 W. 클링크 3세]. 그러나 타락한 종교 권력은 이 완전한 표적 앞에서도 도리어 완악해지는 비극적 불신을 보이며 주님을 죽이려는 사법적 정죄를 확정합니다 [안드레아스 J. 쾨스텐베르거, R. 앨런 컬페퍼]. 결국 이 표적은 죽은 자를 살리심으로 주님 스스로가 죽음의 자리로 걸어 들어가시는 위대한 '대속적 반전'의 신비를 야기합니다 [R. 앨런 컬페퍼].
1. [관찰 질문] 예수님은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들으셨을 때, 이 병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요 11:4 참조)
2. [관찰 질문] 예수님께서 무덤에 도착하셨을 때,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는 이미 며칠이 지난 상태였습니까? (요 11:17 참조)
3. [해석 질문] 게리 버지 교수의 주해를 바탕으로, 예수께서 무덤 앞에서 느끼신 '비통히 여기심(엠브리마오마이)'이 단순한 인간적 슬픔을 넘어 어떤 구속사적 의미(죄와 죽음을 향한 메시아의 태도)를 담고 있는지 설명해 보십시오.
4. [해석 질문] 안드레아스 쾨스텐베르거가 지적한 '가야바의 아이러니(요 11:49-52)'의 관점에서, 사악한 종교 지도자의 정치적 선동이 어떻게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안에서 온 세상의 흩어진 자들을 하나로 모으는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에 대한 확실한 예언으로 전치되었는지 논증해 보십시오.
5. [적용 질문] 아더 핑크는 주님이 나사로의 병 소식을 듣고도 이틀을 더 유하신 것을 '사랑의 지체(delay of love)'라고 명명했습니다. 나의 삶과 개인 묵상(개인 meditation) 가운데, 간절한 기도의 제목에 대해 하나님께서 즉각 응답하지 않으시고 지체하시는 것처럼 느껴져 낙심했던 적이 있습니까? 나사로를 통해 더 큰 영광을 드러내신 주님을 신뢰하며, 지금 내가 인내로 복종해야 할 영역은 무엇인지 나누어 봅시다.
6. [적용 질문] 프랜시스 몰로니가 분석한 가룟 유다의 시선처럼, 내 뜻과 방식대로 역사하지 않으시는 주님의 십자가 걸음(낮아짐과 대속의 죽음) 때문에 은밀한 회의감이나 영적 소경됨에 빠져 있지는 않습니까? 내 야망을 투사한 메시아가 아니라, 성경이 증언하는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의 주권 앞에 나의 생각과 개인 묵상의 방향을 어떻게 전적으로 수정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고백해 봅시다.
7. [적용 질문] 이번 요한복음 11장 말씀을 전체적으로 깊이 읽고 성찰하면서 죄인을 향한 용서의 복음과 타협 없는 거룩한 신적 위엄 중 어떤 말씀이 내 심령에 가장 강한 고백으로 남았습니까? 죄 가운데 죽을 수밖에 없던 나를 참된 자유의 자리로 인도하신 생명의 빛 되신 주님께 감사하며, 삶의 자리에서 실천하고 싶은 구체적인 다짐을 적고 함께 나누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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