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성경 공부
요한복음 성경 공부
요한복음 10장은 선한 목자 담화(1-21절)와 수전절 예루살렘 성전 행각에서 벌어진 치열한 기독론적 심문(22-42절)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친백성을 위한 유일한 구원의 통로이자 주권적 통치자이심을 장엄하게 선포합니다. 본문은 참된 목자와 도둑을 대조하며 자신을 양의 문이자 선한 목자로 계시하신 '선한 목자 담화(1-21절)' , 수전절 성전 솔로몬 행각을 배경으로 성부와 성자의 영원한 일치와 신성을 증거하신 '수전절 논쟁(22-39절)' , 그리고 박해를 피해 요단 강가로 물러나시어 세례 요한의 증언을 성취하시는 '공생애 전반부의 결론적 인클루지오(40-42절)' 로 전개됩니다.
구속사적 맥락에서 10장은 앞선 9장의 날 때부터 맹인 되었던 자의 치유 사건과 중단 없이 연결되는 기독론적 해설서입니다 [게리 M. 버지]. 9장에서 바리새인들은 표적의 빛을 보고도 눈이 멀어 참된 제자를 출교하는 영적 맹목을 드러냄으로써 자신들이 '삯꾼과 도둑'임을 자인했습니다 [안드레아스 J. 쾨스텐베르거]. 이에 주님은 구약 에스겔 34장의 심판적 목자 예언을 친히 성취하시며, 구약의 낡은 유대교적 울타리를 허무시고 영원한 삼위일체적 연합 안에서 양들에게 풍성한 생명을 주시는 메시아적 통치를 선언하셨습니다 [아더 W. 핑크]. 특히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30절)"는 선언은 신성모독의 정죄를 넘어, 택함 받은 자기 양들을 영원토록 보존하시는 신적 구원 작정의 절대적 보증입니다 [마리안 메예 톰슨].
1. [관찰 질문] 예수님은 선한 목자로서 양들을 위해 무엇을 하신다고 거듭 말씀하셨습니까? (요 10:11, 15 참조)
2. [관찰 질문] 수전절에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자신과 아버지가 어떤 관계라고 선포하셨습니까? (요 10:30 참조)
3. [해석 질문] 게리 버지 교수의 주해를 참고하여, 수전절이라는 역사적 절기 배경(에스겔 34장)과 '선한(칼로스)' 목자라는 칭호가 당시 영적 소경이었던 유대교 종교 지도자들의 거짓된 지도력과 어떻게 대조되는지 설명해 보십시오.
4. [해석 질문] 에드워드 클링크와 마리안 메예 톰슨의 관점에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30절)"라는 선언이 어떻게 성부와 성자의 본체적·기능적 일치를 드러내며, 이것이 택함 받은 양들의 영원한 보존 및 안전을 어떻게 보장하는지 개혁주의 구원론의 관점에서 논증해 보십시오.
5. [적용 질문] 아더 핑크는 참된 목자께서 자기 양들의 이름을 각각 불러 유대교라는 율법의 울타리 밖으로 인도하여 풍성한 꼴을 먹이신다고 주해했습니다. 율법주의적인 정죄나 세상의 정욕이라는 옛 울타리에 갇혀 있던 나를 복음의 참된 자유로 불러내신 목자의 음성을 들었던 구체적인 경험이 있다면, 오늘날 나의 개인 묵상(개인 meditation) 속에서 어떻게 그 음성에 순종하며 따라가고 있는지 나누어 봅시다.
6. [적용 질문] 성 요한 크리소스톰은 양의 우리의 '문'을 성경(Scriptures)으로 해석하며, 성경을 통하지 않고 담을 넘는 거짓된 가르침으로부터 양들을 지키는 방어벽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최근 나의 신앙생활과 개인 묵상 속에서 성경 말씀이라는 유일한 문을 통해 주님과 교제하기보다, 세상의 철학이나 인간적인 수단(담을 넘으려는 시도)에 의지하려 했던 영역은 없었는지 돌아보고, 말씀의 권위 앞에 온전히 굴복하기로 결단해 봅시다.
7. [적용 질문] 이번 요한복음 10장 말씀을 전체적으로 깊이 읽고 성찰하면서 죄인을 향한 용서의 복음과 타협 없는 거룩한 신적 위엄 중 어떤 말씀이 내 심령에 가장 강한 고백으로 남았습니까? 죄 가운데 죽을 수밖에 없던 나를 참된 자유의 자리로 인도하신 생명의 빛 되신 주님께 감사하며, 삶의 자리에서 실천하고 싶은 구체적인 다짐을 적고 함께 나누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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